풍양 조씨 항렬표: 전직공계, 호군공파, 회양공파, 금주공파, 평장사공파, 상장군공파 돌림자

풍양 조씨 항렬표: 전직공계, 호군공파, 회양공파, 금주공파, 평장사공파, 상장군공파 돌림자

풍양 조씨(豐壤 趙氏) 역사

풍양 조씨는 조선 후기 세도정치로 유명한 성씨로, 시조인 조맹 이후 계보가 각 계파별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시조 조맹은 후삼국시대 신라 풍양현에서 태어나, 천마산 기슭 바위동굴에서 난세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후고구려 군을 이끌고 후백제와 전쟁 중이던 왕건이 전투에서 패하고 도망쳤을 때, 풍양현에 숨어 사는 ‘바우도사’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 좋겠다는 군사회의의 의견을 받아들여 직접 찾아가 책사로 삼았다고 전해집니다. 고려가 건국되자, 태조 왕건은 조맹에게 ‘조(趙)’라는 성과 ‘맹(孟)’이라는 이름을 하사하고, 삼한개국공신 3등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남양주시 천마산에는 조맹이 왕건과 만났다고 전해지는 현성암(見聖庵)이라는 유적이 있으며, 조맹이 홀로 마셨다는 우물 인근은 ‘독정이’라는 마을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남아있습니다. 풍양 조씨는 조선 후기에 효명세자의 장인인 조만영과 그 아우 조인영을 중심으로 세를 일으켜 세도정치의 한 축을 형성했습니다. 이후 헌종과 철종 등 대를 잇지 못한 왕들이 잇따라 나오면서, 조 대비가 흥선대원군의 아들 익성군을 효명세자의 양자로 삼아 대통을 이으면서 안동 김씨와의 권력 다툼에서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풍양 조씨 분파

풍양 조씨의 분파는 크게 세 계대로 나뉘며, 그중 전직공계는 세 개 파로 나뉘어 총 다섯 개의 분파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전직공계(殿直公系)

고려 중기 천화사전직(天和寺殿直)을 지낸 전직공(殿直公) 조지린(趙之藺)을 1세로 삼고 있습니다. 전직공의 6세손인 대언공 조염휘의 자손대에 이르러 호군공파, 회양공파, 금주공파로 나뉘게 됩니다.

  • 호군공파(護軍公派): 조지린의 6세손인 조염휘(趙炎暉)의 장남 조사충(趙思忠)을 중시조로 합니다.
  • 회양공파(淮陽公派): 조염휘의 3남 조신(趙愼)을 중시조로 합니다.
  • 금주공파(錦州公派): 조염휘의 4남 조임(趙𥙛)을 중시조로 합니다.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 남원공파

충렬왕 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낸 조신혁(趙臣赫)을 1세로 삼고 있습니다. 과거 명칭은 남원공파였으나, 중시조의 증손인 남원도호부사를 지낸 조계팽(趙季砰)의 후손이 현달하여 조계팽의 후손을 중심으로 족보가 편찬되었고, 조계팽의 두 형에 대한 기록이 실전되었기 때문에 평장사공파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

고려 중기 상장군(上將軍)을 지낸 조보(趙寶)를 1세로 삼고 있습니다.

풍양 조씨(豐壤 趙氏) 항렬표

풍양 조씨의 항렬표는 각 계파별로 다음과 같이 구분됩니다.

풍양 조씨(豐壤 趙氏) 세대전직공계(殿直公系) 항렬표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항렬표상장군공파(上將軍公派) 항렬표
17세 만(萬)□ 
18세 □년(年) 
19세 희(熙)□ 
20세 □재(載) 
21세 돈(敦)□ 
22세 □묵(默) 
23세 병(柄)□ 
24세동(東)□□기(紀)갑(岬)□
25세□구(九)강(康)□□일(日)
26세남(南)□□규(揆)병(昺)□
27세□연(衍)연(演)□□종(宗)
28세성(誠)□□행(行)성(晟)□
29세□희(熙)진(振)□□기(玘)
30세용(鏞)□□동(東)강(慷)□
31세□신(新)순(淳)□□상(庠)
32세중(重)□□경(卿)성(聖)□
33세□규(揆)기(祺)□□채(蔡)
34세용(用)□□성(成)진(陳)□
35세□원(元)창(彰)□□건(乾)
36세상(商)□□중(重)천(遷)□
37세□형(衡)연(縯)□□정(正)
38세무(茂)□□직(稙)무(武)□
39세□범(範)범(範)□□회(回)
40세강(康)□□용(鏞)용(庸)□
41세□재(宰)승(承)□□신(薪)
42세종(鍾)□□욱(旭)영(郢)□
43세□주(湊)영(寧)□□규(葵)
44세 □무(茂) 
45세 재(宰)□ 
46세 □정(程) 
47세 태(兌)□ 
48세 □우(宇) 
49세 건(建)□ 
50세 □보(輔) 

풍양 조씨의 항렬표는 세대를 기준으로 이름에 돌림자를 사용하여, 각 계파별로 고유한 명칭을 이어갑니다. 이는 후손들이 자신의 계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각 계파마다 세대별 돌림자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통해 풍양 조씨 가문의 다양한 계파와 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론

풍양 조씨는 조선 후기 세도정치의 중심에 섰던 가문으로, 그들의 항렬표를 통해 가문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각 계파별로 고유한 돌림자를 사용하여 후손들이 계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는 가문의 전통과 역사를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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