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시 모음, 매화 앞에서 / 이해인, 홍매화 / 도종환, 매화송(梅花頌) / 조지훈, 매화 사랑 / 김남조,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 김용택, 매화꽃 / 천상병
매화, 그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알리는 첫 꽃으로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매화에 대한 시는 그 아름다움과 의미를 더 깊이 있게 표현해 줍니다. 여기 몇몇 대표적인 매화 시를 모아봤습니다.
매화송(梅花頌) 조지훈
매화송(梅花頌) / 조지훈
매화꽃 다 진 밤에
호젓이 달이 밝다구부러진 가지 하나
영창에 비치나니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빈 방에 내 홀로
눈을 감아라비단옷 감기듯이
사늘한 바람결에떠도는 맑은 향기
암암한 옛 양자라아리따운 사람이
다시 오는 듯보내고 그리는 정은
싫지 않다 하여라
매화꽃이 지고 나서도 달빛 아래 호젓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구부러진 가지 하나가 영창에 비치며, 아리따운 사람을 멀리 보내고 홀로 방에 남아 눈을 감는다는 내용의 시입니다. 비단옷을 감싸듯 사늘한 바람결에 떠도는 맑은 향기가 옛 양자를 떠올리게 하며, 아리따운 사람이 다시 오는 듯한 그리움을 표현합니다.
매화 사랑 김남조
매화 사랑 / 김남조
새봄의 전령
매화가 피었습니다.
매화는 첫새벽 샘물 위에
이슬 설픗 얹히듯이
고요히 피어납니다매화는
꽃이면서 정신입니다
눈 그치면 꽃 피자 꽃 피자고
스스로 기운 돋우는
용맹한 분발입니다
가장 오래 머무는 꽃도
마음속 날마다의 매화입니다.
새봄의 전령, 매화가 피었다고 시작하는 이 시는 매화가 꽃이면서도 정신이라고 표현합니다. 눈이 그치면 꽃이 피자며 스스로 기운을 돋우는 용맹한 분발을 상징하며, 마음속 날마다의 매화를 가장 오래 머무는 꽃으로 비유합니다.
매화 앞에서 이해인
매화 앞에서 / 이해인
보이지 않기에 더욱 깊은 땅속 어둠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 꽃잎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이
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뼛속 깊이 춥다고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가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하던
희디흰 봄 햇살도 꽃잎 속에 접혀 있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살아갈수록 겨울은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 거란다
그래, 알고 있어 편하게만 살 순 없지
매화도 그렇게 말했단다
눈이 맑은 소꿉동무에게
오늘은 향기 나는 편지를 쓸까
매화는 기어이
보드라운 꽃술처럼 숨겨두려던
눈물 한 방울 내 가슴에 떨어뜨리네.
매화 앞에서 서면 보이지 않는 땅속 어둠부터 꽃잎에 이르기까지 먼 길을 걸어온 어여쁜 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매년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피어나는 매화와 눈 속에 묻어둔 이별의 슬픔이 새가 되어 날아오는 모습을 통해, 겨울이 길고 봄이 짧더라도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나타냅니다.
매화꽃에 얽힌 시들
매화꽃이 피는 계절은 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들의 시를 통해 매화의 아름다움과 함께, 사랑, 그리움,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다음은 매화꽃을 주제로 한 시들의 모음입니다.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 김용택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 김용택
매화꽃 꽃 이파리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섬진강을 보셨는지요
푸른 강물 하얀 모래밭
날선 푸른 댓잎이 사운대는
섬진강가에 서럽게 서보셨는지요
해 저문 섬진상가에 서서
지는 꽃 피는 꽃을 다 보셨는지요
산에 피어 산이 환하고
강물에 져서 강물이 서러운
섬진강 매화꽃을 보셨는지요
사랑도 그렇게 와서
그렇게 지는지
출렁이는 섬진강가에서 서서 당신도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는 보았는지요
푸른 댓잎에 베인
당신의 사랑을 가져가는
흐르는 섬진강 물에
서럽게 울어는 보았는지요
섬진강의 매화꽃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른 강물에 날리는 모습을 묘사하며, 섬진강가에서 서럽게 서보았는지를 묻습니다. 사랑도 오고 가는 것을 매화꽃과 비교하며, 섬진강가에서 서서 매화꽃 꽃잎처럼 물 깊이 울어본 경험을 공유합니다.
홍매화 – 도종환
홍매화 / 도종환
눈 내리고 쌓여 소백산 자락 덮어도
매화 한 송이 그 속에서 핀다나뭇가지 얼고 또 얼어
외로움으로 반질반질해져도
꽃봉오리 솟는다어이하랴 덮어버릴 수 없는
꽃 같은 그대 그리움그대 만날 수 있는 날 아득히 멀고
폭설은 퍼붓는데숨길 수 없는 숨길 수 없는
가슴속 홍매화 한 송이
눈이 내리고 쌓여도 소백산 자락에서 피어나는 매화 한 송이의 모습을 통해, 어떤 외로움과 추위 속에서도 꽃봉오리가 솟는 생명력과 그리움을 표현합니다. 숨길 수 없는 가슴속 홍매화 한 송이처럼, 그리움을 간직한 채 견디는 모습을 그립니다.
매화꽃이 필 때면 / 박노해
매화꽃이 필 때면 / 박노해
청매화가 필 때면
마음이 설레어서
아침길에도 가보고
달빛에도 홀로 사 서성입니다청매화 핀 야산 언덕에
홀로 앉아 술잔을 들고
멀리 밤기차가 지나가는 걸 바라보면
아, 그리운 사람들은 왜 멀리 있는지
꽃샘바람에 청매화 향기는
나를 못살게 못살게 흔들고
그대가 그리워서 얼굴을 묻고
하르르 떨어지는 꽃잎처럼
그냥 이대로 죽고만 싶습니다
청매화가 피어나는 계절이 되면, 마음이 설레어 아침길과 달빛 아래에서도 매화꽃을 찾아 서성이게 만드는 박노해의 시입니다. 꽃샘바람에 휘날리는 청매화 향기에 이끌려,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깊은 그리움을 느끼는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매화꽃이 필 때면 / 박노해
매화 / 정호승
매화 / 정호승
퇴계 선생 임종하신 방 한구석에
매화분 하나 놓여 있다
매화분에 물 주거라
퇴계 선생 돌아가실 때 남기신 마지막 말씀
소중히 받들기 위해
매화분에 매화는 피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데
나는 통장의 돈 찾아라
한마디 남기고 죽을까봐 두려워라
오늘도 낙동강 건너 지구에는
한창 매화꽃이 피고 있다
새들은 꽃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은 나를 보고
죽더라도 겨울 흰 눈 속에 핀
매화 향기에 가서 죽으라고 자꾸 속삭이는데
도산서원 매화나무 가지에 앉은 새들은
어디에 가서 죽는가
퇴계 이황 선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매화에 대한 애정을 남긴 이야기를 통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정호승의 시입니다. 매화꽃이 피어있는 매화분을 통해 삶과 죽음, 사랑의 가치를 되새깁니다.
매화 / 정호승
매화를 찾아서 / 신경림
매화를 찾아서 / 신경림
구름떼처럼 모인 사람들만 보고 돌아온다
광양 매화밭으로 매화를 보러 갔다가
매화는 덜 피어 보지 못하고
그래도 섬진상 거슬러 올라오는 밤차는 좋아
산허리와 들판에 묻은 달빛에 취해 조는데
차 안을 가득 메우는 짙은 매화향기 있어
둘러보니 차 안에는 반쯤 잠든 사람들뿐
살면서 사람들이 만드는 소음과 악취가
꿈과 달빛에 섞여 때로 만개한 매화보다도
더 짙은 향내가 되기도 하는 건지
내년 봄에 다시 한번 매화 찾아 나섰다가
매화는 그만두고 밤차나 타고 올라올까
광양 매화밭으로 매화를 보러 갔지만, 매화 대신 사람들만 보고 돌아온 경험에서 출발하는 신경림의 시입니다. 밤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차 안 가득 매화 향기와 함께, 삶 속에서 만나는 소음과 악취가 때로는 꿈과 달빛에 섞여 매화보다 더 짙은 향기를 남긴다는 깨달음을 전합니다.
매화꽃 / 천상병
매화꽃 / 천상병
뜰에 매화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옛날의 시인들이
매화꽃 시를 많이 읊었으니
나도 한 편 끌까 합니다하얀 꽃송이가 하도 매력이 있어
보기만 하여서는 안 되겠기에
매화꽃과 친구가 되고 싶구나!지금은 92년 4월 30일인데
봄을 매화꽃 혼자서
만끽하고 있는가 싶구나!한들한들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천사와도 같구나!
오래 꽃피어서 나를 달래다오
매화꽃의 탐스러운 아름다움을 친구처럼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천상병의 마음을 담은 시입니다. 옛 시인들이 매화꽃에 노래한 것처럼, 그도 매화꽃과의 교감을 통해 봄을 만끽하고자 합니다. 매화꽃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통해 자연과의 깊은 연결감을 느끼게 합니다.
매화꽃을 주제로 한 이 시들은 각각 다른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하며, 매화꽃이 가진 의미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합니다. 매화꽃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전하는 깊은 울림과 영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