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조씨 항렬표, 시조, 역사
창녕 조씨 항렬표, 시조, 역사
창녕 조씨는 경상남도 창녕군을 본관으로 하는 대표적인 성씨 중 하나입니다. 이 가문의 시조는 조계룡이며, 그는 신라 제26대 진평왕의 사위로 전해집니다. 조계룡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으며, 그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전통과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조계룡의 어머니는 한림 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禮香)입니다. 예향은 창녕현 고암촌 출신으로, 병을 앓던 중 화왕산 용지에서 목욕재계와 기도를 하였고, 기적적으로 병이 치유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꿈에서 장부를 보았는데, 장부는 그녀의 아들이 용의 아들 옥결(玉玦)의 후손이 될 것이며, 경상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에 따라 예향은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의 겨드랑이 아래에 ‘조(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광옥은 이 소식을 왕에게 전했고, 왕은 이 아들의 성을 조씨로 하고 이름을 계룡(繼龍)으로 지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조흠의 아들 조겸이 고려 태조 왕건의 딸 덕공 공주와 혼인하였고, 태악서승이라는 벼슬을 지냈습니다. 이 기록을 바탕으로 조겸을 중시조로 삼고 있습니다. 창녕 조씨는 이후 창녕을 본관으로 하여 세대를 이어왔으며, 고려 후기와 조선 시대에 많은 인물을 배출했습니다.
창녕 조씨의 역사와 주요 인물
창녕 조씨는 고려 후기 위화도 회군 이후 역사 정사에 자주 등장하며, 조선 시대에도 많은 중요한 인물들을 배출했습니다. 다음은 창녕 조씨의 주요 인물들입니다:
- 조익수(曺益修): 태조 때 경상도병마도절제사를 지냈습니다.
- 조상치(曺尙治): 세종 시대에 문과 장원급제하였습니다.
- 조석문(曺錫文):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고 영의정을 지냈습니다.
- 조위(曺偉): 성종 때 성리학의 대가로 두시언해와 만분가를 지은 대문장가입니다.
- 조신(曺伸): 조위의 동생으로 시에 뛰어나며 중종의 명으로 2륜행실도를 편찬하였습니다.
- 조계형(曺繼衡): 연산군 때 호조참판을 역임했습니다.
- 조탁(曺倬): 광해군 때 공조참판을 지냈습니다.
- 조응인(曺應仁): 임진왜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고, 광해군 때 대구부사를 지냈습니다.
- 조희인(曺希仁): 인조 때 합천군수를 지냈습니다.
- 조정립(曺挺立): 인조 때 정주목사를 지냈습니다.
- 조정생(曺挺生): 인조 때 창원부사를 지냈습니다.
- 조시일(曺時逸): 인조 때 예조좌랑을 지냈습니다.
- 조시량(曺時亮): 효종 때 양산군수를 지냈습니다.
- 조효창(曺孝昌): 숙종 때 문과 장원 급제하였습니다.
- 조식(曺植): 조선 중기의 대유학자이자 북인의 거두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등의 의병장들을 배출했습니다.
- 조진구(曺鎭九)와 조진억(曺鎭億): 고종 때 동지돈녕부사를 지냈습니다.
- 조시영(曺始永): 고종 때 관찰사를 지냈습니다.
창녕 조씨의 항렬표와 통일 과정
세 | 창녕조씨 항렬표(돌림자) |
22세 | ★承(승) |
23세 | 秉(병)★ |
24세 | ★煥(환) |
25세 | 圭(규)★, 喜(희)★, 基(기)★ |
26세 | ★鉉(현), ★鎬(호), ★鐘(종) |
27세 | 永(영)★, 海(해)★, 洙(수)★ |
28세 | ★根(근), ★植(식), ★穆(목) |
29세 | 容(용)★, 炯(형)★, 然(연)★ |
30세 | ★載(재), ★坤(곤), ★塤(훈) |
31세 | 鎰(일)★, 鍵(건)★, 鏞(용)★ |
32세 | ★泰(태), ★淳(순), ★淵(연) |
33세 | 東(동)★, 相(상)★, 英(영)★ |
34세 | ★燮(섭), ★烈(열), ★杰(걸) |
35세 | 均(균)★, 重(중)★, 垣(원)★ |
36세 | ★鎔(용), ★鎭(진), ★錫(석) |
37세 | 潤(윤)★, 準(준)★, 汶(문)★ |
38세 | ★稷(직), ★栢(백), ★杓(표) |
39세 | 熙(희)★, 煐(영)★, 螢(형)★ |
40세 | ★堉(육), ★墩(돈), ★培(배) |
41세 | 鐫(전)★, 銓(전)★, 鑽(찬)★ |
42세 | ★浩(호), ★河(하), ★洛(락) |
43세 | 和(화)★, 楨(정)★, 桓(환)★ |
44세 | ★勳(훈), ★黙(묵), ★愚(우) |
창녕 조씨의 항렬은 오랜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변경되어 왔습니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 각 파에서는 항렬자를 엄격히 제정하여 사용하였으나, 갑술대동보 발간 당시 전국의 종친들이 모여 각 파에서 사용하는 항렬자를 통일했습니다.
현재 창녕 조씨의 항렬은 2017년에 새롭게 제정된 표준 항렬자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표준 항렬자는 대종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조사와 정리를 통해 통일된 것입니다. 항렬자는 오행(五行)인 목화토금수를 부수로 하는 글자로 정해졌으며, 각 세대당 세 자씩의 항렬자를 정하여 같은 이름이 많아지는 것을 방지했습니다.
각 세대는 세 자씩의 항렬자를 갖고 있으며, 이는 창녕 조씨의 분파마다 상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창녕 조씨의 항렬은 대략 24세에서 28세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고려 중기에 세대수를 한 번 재정립했기 때문입니다. 항렬자의 원칙은 세대수의 일의 자릿수가 1이나 6이면 금(金), 2나 7이면 수(水), 3이나 8이면 목(木), 4나 9이면 화(火), 5나 0이면 토(土)로 정해졌습니다.
2016년에는 창녕 조씨 대종회가 국립중앙도서관과 여러 종회에 보관된 족보를 조사하여 2017년에 표준 항렬자로 확정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항렬 표준화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결론
창녕 조씨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성씨로, 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배출해왔습니다. 시조 조계룡의 전설적인 출생 이야기와, 고려와 조선 시대에 활약한 다양한 인물들은 창녕 조씨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잘 보여줍니다. 현대에는 항렬이 통일되어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이는 조씨 가문의 전통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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